“1기 신도시 정책은 한마디로 물량 공세다.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은 수급불균형과 투기수요가 몰려 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대규모 물량을 통한 공격이 아파트값을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엄청난 물량을 아파트 시장에 쏟아 내놓는데 아파트값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 (이규황 건설교통부 토지국장, 1989년 4월 동아일보 인터뷰)
정부는 집값 폭등에 ‘물량’ 처방을 내놨다. 1988년 서울은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메가시티’(Mega City)가 됐다. 전국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갑작스러운 인구밀집화는 심각한 주택난을 불러 집값 폭등을 부채질 했다. 특히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는 주거지 선호도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에 아파트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파트 파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수도권 신도시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당시 정부는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지역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 집중되는 수요를 분산시켜 집값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먼저 정부는 비교적 땅값이 싼 일산과 분당을 대상으로 1989년부터 5년에 걸친 1기 신도시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별도로 택지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던 부천 중동·안양 평촌·군포 산본 등 3개 지구를 포함시키면서 총 5개의 1기 신도시 개발지가 확정됐다
이외에도 신도시 30년 기획팀이 1•2기 신도시의 인구•면적•교통 등을 분석한 결과는 ‘데이터로 보는 신도시 30년’ 페이지에서 반응형 인터렉티브(Interactive) 콘텐츠 형태로 손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데이터로 보는 신도시 30년 바로 가기〉“새로 건설될 분당·일산은 단순한 위성도시가 아니라 상업·업무·교육·문화 등 자족적인 도시기능을 고루 갖추게 돼 서울의 다양한 업무기능을 부분적으로 수요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다가 중산층이 선호하는 중형 이상의 주택을 대량공급,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수요를 흡수하고 서울 도심과도 30분이 내에 연결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울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본다 ” (1989년 4월 27일 1기 신도시 발표 당시 건설교통부 관계자)
2기 신도시 역시 서울을 겨냥한 주택 공급 확대책이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각종 규제에도 서울 집값이 잡히지 않자 2기 신도시를 추진한다. 당시 서울은 대규모 주택 공급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서울 인접 지역에 수요를 분산시켜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2기 신도시 개발지로는 △파주 운정 △화성 동탄1 △화성 동탄2 △김포 한강 △인천 검단 △평택 고덕 △수원 광교 △성남 판교 △서울 송파(위례) △양주 옥정 등 수도권 지역 10곳이 지정됐다.
정부의 1·2기 신도시 건설 목적은 서울에 쏠린 주거수요를 인접지역으로 최대한 분산시키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을까. 시사저널e 신도시30년 기획팀은 데이터분석전문 브이더블유랩(VW Lab) 김승범 소장과 공동으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마이크로데이터를 통해 신도시와 서울 간 인구 이동 흐름을 분석했다. 대상 신도시는 1·2기 중 규모가 큰 고양 일산·성남 분당·파주 운정·화성 동탄 4곳으로 추렸다.
1기 신도시는 이주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던 1994년과 1995년 지역 간 순이동(전입자에서 전출자를 제외한 순인구 이동)을 살펴보고 서울 인구를 얼마나 유입했는지 살펴봤다. 다만 당시 전입지와 전출지가 시도 단위로만 공개돼 인구 이동의 세세한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2001년 이후에는 통계청의 MDSS(마이크로데이터서비스시스템)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1·2기 신도시별로 해당하는 읍면동만 솎아내 가각을 서울, 경기도(해당 신도시 제외), 인천, 그 밖의 시도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해 각 신도시 기준으로 순이동량을 계산했다.
입주가 집중되던 시기를 기준으로 인구이동 흐름을 살펴보면 1·2기 신도시는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1기 신도시 일산과 분당은 대부분 서울에 살던 사람들이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기 신도시 동탄과 운정은 이주 인구의 70~80%가 경기도민(해당 신도시 제외)였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전경 Ⓒ시사저널DB
1994·1995년, 두 해 동안 전국에서 경기도로 순이동한 인구는 69만4591명이다. 이 중 서울은 61만9815만명으로 전체 순이동의 89%를 차지했다. 특히 분당과 일산에서는 서울 인구 유입이 두드러졌다. 분당의 인구는 17만800명에서 31만7716명으로, 일산은 5만1637명에서 23만2286명으로 늘었다. 2년 동안 두 도시에서만 32만7675만명이 증가했다. 두 신도시의 인구 변동 경향이 경기도와 같다고 가정한다면 두 도시의 인구 중 89%(약 29만명)는 서울에서 이주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경기도 내에서 1기 신도시로의 유입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일산을 포함하는 고양시의 경우 1995년 한 해 동안 같은 경기도의 다른 시군구에서 1만7459명이 순유입 됐다. 같은 해 전체 순유입 12만4245명 중 14.1%에 불과하다. 즉 1기 신도시 초기의 인구형성 과정에서는 분명히 서울의 인구 분산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의미다.
시간이 지날수록 1기 신도시의 서울 인구 유입 효과는 떨어졌다. 통계청의 MDIS(마이크로데이터서비스시스템)을 살펴보면 조사가 시작된 2001년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동한 순유입 인구는 6815명이었다. 2005년 2842명으로 급락하더니 2010년 2126명, 2015년 2046명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서울에서 일산으로 순유입 된 인구는 48명에 그쳤다. 분당 역시 2001년 1만3550가구였던 순유입 인구가 2005년 6591명, 2015년 3409명, 2018년 1130명으로 집계됐다.
그 사이 지방에서 유입되는 인구는 점차 늘어났다. 일산의 경우 2001년에 서울과 수도권의 유입량은 각각 6815명과 1949명, 즉 3.5 : 1의 비율이다. 서울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됐지만 수도권 외 지역, 다시 말해 ‘지방’의 인구도 일산으로 많이 이주해갔다. 일산의 인구가 정점에 다다르던 2005년에는 수도권과 지방에서 일산으로 온 인구가 거의 비슷하다.
눈에 띄는 점은 가장 최근인 2018년 서울에서는 여전히 순유입 되는데 비해 지방으로는 순유출이 일어난다. 현재 일산의 경우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해오고자 할 때 굳이 선택하게 되는 지역이 아니라는 의미다.
분당 역시 일산과 비슷하다. 인구는 이미 순유출로 돌아서서 감소 추세에 있었으며 경기도로는 계속 순유출이 일어났다. 서울과 수도권 외의 순유입량은 일산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같은 2001년의 경우 서울과 수도권의 순유입량은 3.75 : 1이다. 분당에서는 2006~2009년에는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많이 인구가 유입됐다.
또한 서울·인천·경기 전 지역을 모두 수도권, 그 이외의 지역을 지방이라고 할 때 인구이동량을 비교하면 일산과 분당 모두 2001년부터 이미 수도권보다는 지방의 인구가 이 두 신도시로 더 많이 유입됐다.
2기 신도시는 경기도의 인구를 많이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입주가 가장 빨랐던 화성 동탄은 대부분의 인구가 경기도에서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의 경우 경기도(3만2223명)에서는 서울(4122명)과 지방(2589명)을 합친 것보다도 3배 많은 순유입 됐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도 내에서 동탄으로 이동한 순유입 인구는 16만92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순유입 인구의 76%에 해당하는 숫자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에서 동탄으로 이동한 순유입 인구는 2만5828명에 그쳤다.
2001년 입주를 시작한 파주 운정 역시 그 해 경기에서 순유입 된 인구가 1만3590명으로 총 순유입 인구의 66%를 차지했다. 서울에서 순유입 된 인구는 601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까지 경기도로 순유입 된 인구는 13만5672명으로 서울의 순유입 인구(4만32명)에 비해 3배까지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