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와 교통망을 갖춘 완성도 높은 3기 신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권역별로 균형있게 위치한 신도시는 서울에 편중된 기업과 일자리를 분산해 수도권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갈 것. 수도권과 지방에 살더라도 서울 출퇴근에 대한 걱정 없이, 주거만족도가 높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겠다.” (5월 7일 3기 신도시 발표 현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정부는 3기 신도시 추진 과정에서 원주민과 인근 신도시 지역민의 반발을 사자, 자족기능 강화에 부쩍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3기 신도시 개발지의 40%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자족시설용지로 채우겠다고 밝히면서다. ‘베드타운’ 논란이 이는 1·2기 신도시와 차별성을 두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3기 신도시의 또 다른 이름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다.
유독 정부가 자족기능을 강조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족도시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발된 신도시들 역시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은 자족적인 도시였다. 이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앙’ 같은 명제가 됐다. 그런데 여태까지 국내·외에서 자족적인 신도시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저 멀리 있는 신기루 같은 목표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1980년대 서울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주택가격 상승,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고용문제, 기반시설 부족 등 여러 가지 도시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서울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하고 집값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1기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다. 서울 중심으로부터 20km 떨어진 일산·분당·평촌·산본·중동 등 5개 수도권 지역에 166만가구에 달하는 아파트를 공급했다.
1기 신도시는 대규모 주택공급을 통한 주택부족을 해소하고 서울의 주택가격 급등을 진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단기간의 대규모 개발로 도시의 자족성이나 고용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수도권의 인구집중만 초래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구분 | 분당 | 일산 | 평촌 | 산본 | 중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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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목적 및 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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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 동남쪽 25km(성남시) | 서울 북서쪽 20km(고양시) | 서울 남쪽 20km(안양시) | 서울 남쪽 25km | 서울 서쪽 20km(부천시) |
업무지역 비중 | 3.7% | 5% | 1.2% | 0.4% | - |
당초 1기 신도시는 주거는 물론 상업·녹지·생활편의시설이 다 갖춰진, 서울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족도시 건설이 목적이었다. 특히 신도시 중 분당과 일산은 기존도시와 분리된 자족적 신도시로 추진됐다.
분당은 첨단정보산업과 공공기관, 광역소비·여가활동시설 등을 입지시키기로 계획됐고 일산은 김포공항과 연계한 국제적 업무, 관광 문화기능과 남북교류를 대비한 통일외교기능과 인쇄출판·정보통신기능을 유치하기로 설정했다. 평촌·산본·중동 역시 개발목적과 특성을 부여받은 신도시다.
그러나 단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1기 신도시는 자족기능 확보를 위한 상업·업무 용지가 전체 부지 면적의 1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과소 책정됐다. 결국 1기 신도시는 신규 고용창출이 크지 않은 채 주택공급지로서의 역할에 머물렀다. 고용분산을 수반하지 않은 주택의 대량공급은 결국 고용 중심지인 서울로 통근통행의 증가를 초래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신도시 건설로 인한 서울시의 고용분산 효과는 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지는 ‘직주원격화’가 가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아울러 서울 의존적인 장거리 통근통행의 증가와 교통 혼잡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산업기반이 약하다보니 1기 신도시의 서울 의존도는 지금까지도 높은 편이다. 경기도교통정보센터가 2002년, 2006년, 2010년, 2016년 행정구역별 출근목적 통행량을 도착지별로 구분한 집계자료에 따르면 분당신도시가 속한 성남시 분당구는 서울 출근비중이 2002년 52%에서 2006년 43%, 2010년 39%, 2016년 34%를 기록했다. 줄어들긴 했지만 10대 중 3대는 서울로 출근하는 차량인 셈이다.
일산신도시가 속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통행 비중은 2002년 기준 41%에서 2016년 28%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30%대를 육박한다. 반면 같은 기간 일산구 내에서 이동한 내부 출근통행량 비중은 38%에서 25%까지 줄었다.
서울로 출근하는 차량은 여전히 많다. 성남시 분당구는 2002년 7만2115대였던 서울 출근 차량이 2016년에는 9만639대로 25% 가량 늘었다. 일산구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차량대수는 2002년 5만9528대에서 △2004년 8만2012대 △2006년 7만6513대 △2016년 7만4896대를 기록했다. 남기섭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통근량이 자족성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서울 통근량이 여전히 많다는 것은 산업기반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신도시인 분당 일산 주민의 60%이상이 서울로 출퇴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추진돼온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거론되는 신도시 역시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 굳이 신도시를 건설하려 한다면 서울에 대한 의존성을 낮출 수 있도록 서울에서 40㎞ 이상 벗어난 지역이어야 한다. 자족적인 도시여야 하고 서울과의 연결은 철도 교통 위주로 돼야 바람직하다.” (고건 서울시장, 2001년 1월 30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1기 신도시 조성이 마무리될 무렵 2기 신도시가 등장했다. 참여정부는 2001년부터 추진한 2기 신도시 계획을 현실화 시켰다. 이번에도 서울 수요를 분산해 집값을 안정화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전 신도시가 베드타운, 고밀도 개발, 자가용 위주로 조성됐다는 비판을 의식해 대규모 주택공급보다는 충분한 녹지율 확보하고 자족기능 강화, 신도시별 특화계획 등을 내세워 2기 신도시의 차별화를 꾀했다. 각각 벤처(판교), 첨단·도농복합(동탄), 친환경·대중교통(김포), 친환경·생태(파주) 등의 도시로 설정했다.
특히 2기 신도시는 서울 중심으로부터 40km 떨어진 거리에 조성됐다. 서울 생활권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규모 산업단지를 비롯해 기업들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자족복합도시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중이 담겼다.
1기 신도시 중 한 곳인 일산은 자족기능 확보를 위한 업무 용지가 전체 부지 면적의 5%에 불과했다. 결국 1기 신도시는 신규 고용창출이 크지 않은 채 주택공급지로서의 역할에 머물렀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전경.ⓒ시사저널e
하지만 2기 신도시에서 일자리가 들어설 자족시설용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미미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2기 신도시(판교·동탄1·2·김포 한강·파주 운정·양주 옥정·평택 고덕·송파 위례)의 ‘벤처기업집적시설·도시형공장·소프트웨어진흥시설·산업집적기반시설·지식산업센터 등 지역 발전과 고용 창출을 위한 일자리 자족시설용지’ 평균 비율(2019년 6월 말 기준)은 전체 택지 면적의 3.2%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2기 신도시 내 자족시설용지들의 기업유치가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2기 신도시 8곳에서 미분양이 났거나 공급 일정을 세우지 못한 자족시설용지는 72만1000㎡에 달한다. 당초 계획된 자족시설용지 329만5000㎡ 중 21.9%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팔아야할 용지가 쌓이면서 분양권자인 LH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지면 자족적인 신도시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또다시 실패를 낳았다. 도심 업무지역과 너무 떨어진 탓에 기업들이 외면하면서 2기 신도시들은 여전히 서울과 밀접한 경제적인 연결고리를 잇고 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출퇴근 시간만 늘리는 오류를 나았다. 지나친 자족도시에 대한 환상과 요구는 결국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다. 2기 신도시의 결말이다.
“3기 신도시의 성공은 일자리를 얼마나 공급하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주거와 일터의 분리 문제 극복’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를 가까운 곳에 두려는 현상) 원칙을 벗어나 베드타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1월 7일 ‘미래 자족형 3기 신도시 조성을 위한 TF’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명 경기지사의 말처럼 ‘일자리’는 3기 신도시의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를 발표하면서 단순히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일자리를 만드는 도시’ 공약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3기 신도시의 면적 3분의 1을 자족(自足)시설용지로 설정했다. 자족시설용지 규모는 561만㎡로 이전 신도시의 2배에 달한다. 해당 용지에는 벤처기업시설, 소프트웨어진흥시설, 도시형공장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임차료를 시세의 20~60%만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기업지원허브를 조성해 스타트업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정부와 3기 신도시들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꿈꾸는 자족도시는 판교다. 과거 자족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던 1·2기 신도시들은 대부분 실패를 맛봤다. 기존 수도권 신도시 13곳 가운데 ‘자족도시’로 성공한 사례는 판교테크노벨리를 품고 있는 판교가 유일하다. 다만 제2의 판교가 되기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주요업무지구인 강남권과 가까워 업무 연계가 수월한 입지를 갖췄다. 아울러 주변에 200만~300만 명에 달하는 배후인구를 갖추고 있어 예비 고용인구가 탄탄한 편이다. 무엇보다 땅이 저렴하게 분양된 덕분에 부동산 시세차익을 기대한 기업들이 대거 유치됐다.
반면 그렇지 못한 다른 2기 신도시들은 자족용지에 기업을 유치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판교처럼 업무적 입지와 배후인구, 부동산 시세차익 등 기업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하나도 없다. 강남과 가까운 하남 교산이나 과천이 외에 나머지 지역은 2기 신도시의 전처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3기 신도시가 자족시설용지를 모두 채워도 문제다. 지금 계획되는 자족시설용지를 다 채우려고 하면 판교나 가산디지털단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산업지역 내 기업들이 옮겨가야 한다. 결국 산업용지내 기업에 대한 나눠먹기 게임이 될 수 있다. ‘제로섬 게임’에서 그쪽으로 끌어간다는 얘기는 어딘가는 실패하는 지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각계각층의 우려 속에서도 판은 벌어졌다. 정부는 3기 신도시를 강행하겠다는 뜻의 내비쳤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정부가 ‘3기 신도시 포럼’을 통해 기존 신도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차별화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는 점이다. 3기 신도시 포럼은 도시·건축, 교통, 일자리, 스마스시티, 교육·문화, 환경 등 6개 분야 전문가 50여명이 구성된 싱크탱크다. LH와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각종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다.
3기 신도시 포럼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자체로부터의 도시개발 정책이다. 그동안 신도시 개발은 국토부에서 지시하면 LH나 지방공사가 따라가는 수직적인 구조로 진행됐다. 주택공급에 맞춘 획일화된 정책은 해당 지역에 어울리지 않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LH·지방공사의 경우 공영개발에 투입된 돈을 회수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계획된 자족용지에 관련 없는 기업을 집어넣는 등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그래서 3기 신도시 포럼은 주택공급은 LH가 맡고, 자족시설용지 공급과 계획은 지자체와 민간이 같이 참여하는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추진하는 게 좋겠다고 LH에 건의한 상태다. 자족시설용지의 경우 엄청난 매몰비용이 들어가지만 한 번에 분양하기가 어렵다. 이는 LH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SPC가 별도로 진행하면 LH 부담도 줄이고 그 지역에 맞게 자족시설용지에 들어갈 유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LH는 지금도 떠안고 있는 자족용지가 적지 않다. 만약 SPC 형식으로 진행되면 LH는 재무적인 부담을 덜 수 있고, 해당 지자체들은 그 지역에 맞도록 개발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기업들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지자체가 열의와 전문성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자족도시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3기 신도시 포럼 일자리분과위원장을 맡은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벨리 전경 Ⓒ시사저널e
시사저널e 신도시30년 기획팀이 여러 전문가의 자문과 해외 사례, 관련 자료 분석을 종합해보면 3기 신도시 성공을 위해선 정부가 일자리 문제를 신도시 해법의 전체로 여기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애초부터 주거와 일자리는 함께 양립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진행한다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물론 위에서 아래로의 획일적인 신도시 개발계획도 탈피해야 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나라는 자족도시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모든 국민이 자족도시에 열망하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조정이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대규모 주거단지를 만들겠다고 하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정부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매달려서 너무 큰 그림을 그리게 되면 잃을게 많다. 3기 신도시는 규모가 정말 작다. 중소규모의 택지개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도시가 전체적인 인구 분포나 이런 구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자족성이 어느 정도인지 굉장히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꼭 일자리를 채워 3기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